어린 시절 병원에서 받은 주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팔에 남은 흉터를 보며 어머니가 "그거 안 맞았으면 넌 큰일 날 뻔했어"라고 말하곤 했던 그 기억.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말의 무게를 진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백신이 지켜준 것들이 너무 당연해져서, 우리는 그 빈자리를 상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사라진 공포의 이름들
천연두. 이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는지 감각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오늘날 거의 없다. 20세기만 해도 천연두는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감염되면 세 명 중 한 명은 죽었고, 살아남아도 실명이나 심한 흉터를 남겼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의 전 세계적 박멸을 선언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이 완전히 제거한 전염병이다. 이 성취의 핵심에 백신이 있었다.
소아마비 역시 마찬가지다. 1950년대 한국에서 소아마비가 유행했을 때, 부모들은 여름이 오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수영장, 영화관, 사람 모이는 곳 어디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1955년 미국에서 조너스 소크가 불활성화 백신을 개발하고, 이후 알버트 세이빈이 경구 백신을 완성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대대적인 예방접종 사업이 진행되었고, 소아마비는 점차 기억 속으로 밀려났다.
이 병들이 사라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막대한 자원, 그리고 수백만 명의 예방접종이 그 공포를 역사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당연함의 역설
백신이 성공하면, 그 성공의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프지 않은 사람, 장애를 갖지 않은 아이, 사망하지 않은 부모—이들은 모두 '일어나지 않은 일'로 존재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뉴스가 되지 않고, 통계에서도 두드러지지 않으며, 사람들의 감각에 각인되지 않는다.
이것이 백신이 직면한 근본적인 역설이다. 백신이 잘 작동할수록, 사람들은 백신의 필요성을 덜 느낀다. 천연두가 사라졌으니 천연두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고, 소아마비가 희귀해졌으니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귀찮게 여겨진다. 병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백신 덕분인데, 백신을 맞지 않아도 병이 없으니 백신이 불필요해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영국의 의사이자 백신학자인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1998년 MMR(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주장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이 착시는 위험한 방향으로 폭발했다. 그 논문은 이후 데이터 조작으로 철회되었고 웨이크필드는 의사 면허를 잃었지만, 뿌려진 불신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홍역 접종률이 떨어졌고, 2019년 전 세계 홍역 환자 수는 전년 대비 급증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병이 돌아온 것이다.
집단면역,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방패
백신의 작동 방식은 개인의 면역에 그치지 않는다. 집단면역—인구의 충분한 비율이 면역을 갖게 되어 전염병의 전파 경로가 끊기는 현상—은 백신의 진짜 사회적 힘이다. 문제는 이 방패가 모든 사람이 함께 들어야 작동한다는 점이다.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면역억제 치료를 받는 환자, 특정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 생후 몇 개월의 아기.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면역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보호받는다. 집단면역이 무너지면, 백신을 맞지 못한 이들이 가장 먼저 희생된다. 백신 거부는 개인의 선택으로 포장되지만, 그 결과는 가장 약한 이들에게 향한다.
불신의 시대, 그리고 다시 질문하기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전면에 끌어냈다. mRNA 백신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되었고, 수십억 명이 접종을 받았다. 동시에 백신에 대한 불신도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개발이 너무 빨랐다", "장기 부작용을 알 수 없다", "정부가 강제하고 있다"—이런 우려들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그렇게 단정하는 것 자체가 대화를 단절시킨다.
불신의 뿌리는 단순하지 않다. 과거 의료계가 저지른 오류와 실험—미국의 터스키기 매독 실험, 강제 불임 수술, 약물 임상시험에서의 윤리 위반—은 특정 집단에게 의료 체계에 대한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이번에는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백신 불신을 교육 부족이나 비이성적 태도로만 치부하는 것은, 이 역사적 맥락을 외면하는 것이다.
동시에, 백신이 인류에게 준 것을 부정하는 것도 사실에 어긋난다. 예방접종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이 구해진다는 추정은 반복해서 검증된 연구 결과다. 한국에서도 B형 간염 예방접종이 보편화되면서 간암 발생률이 의미 있게 감소했고, 신생아 파상풍 예방접종으로 영아 사망이 크게 줄었다. 이 데이터는 의견이 아니라 관찰의 결과다.
기억하는 것이 해야 할 일
백신을 둘러싼 논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확신이 아니라 질문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백신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있지만, 그 질문에 답할 때 어느 백신인지, 어느 시점의 데이터인지, 어떤 부작용의 빈도인지를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모든 백신이 동일하지 않고, 모든 부작용이 동등한 위험도를 갖지 않는다.
또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가 이미 수없이 보여주었다. 접종률이 떨어지면 병이 돌아온다. 홍역이 그랬고, 디프테리아가 그랬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은 가능하다.
어머니가 팔의 흉터를 가리키며 했던 그 말—"안 맞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은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그 세상을 유지하는 시작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