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 방송사는 “대한민국의 대법관 세 명이 어젯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졌다”는 단신을 내보냈다. 사실 그날의 술자리는 대법관들끼리의 단순한 회식이 아니었다. 30년 지기 동기 세 사람이 모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긴 파장을, 각자 맡은 사건이 어떻게 연결될지를, 그리고 자신들이 써야 할 판결문 한 줄이 수많은 시민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숙연히 이야기했던 자리였다. 그날 밤 대법관 A는 귀가 후 메모지에 한 줄 적었다. “우리가 헌법을 지키는 방법은, 헌법이 우리를 지키도록 놓아두는 것.”
대한민국의 대법관은 그래서 단순한 ‘최고심판기관 구성원’이 아니다. 14명이 모여 5천만 명의 삶을 뒤바꾸는 문장을 쓰는, 다소 무거운 직책이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생기면서 ‘헌법 최종 해석자’라는 이중 주인이 생겼지만, 여전히 대법관은 ‘대한민국 법치의 최후 보루’로 불린다. 왜 그럴까.
먼저, 대법관은 ‘판례’라는 이름으로 살아 움직이는 법을 만든다. 2004년 이른바 ‘병역거부’ 판결에서 대법관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 결론내렸다. 그 한 줄은 1만 명이 넘는 청년들의 실형을 멈췄고, 2018년 헌법재판소가 같은 취지의 결정을 내리는 데 토대가 됐다. 판례는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살아 움직인다. 대법관이 죽어서도 계속 말을 걸어오는 셈이다.
둘째, 대법관은 ‘권력의 수호자’이자 ‘권력의 견제자’라는 양면을 동시에 지닌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서 대법관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지켜봐야 했다.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 몫이었지만, 탄핵 이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은 대법원이 맡았다. 대법관들은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을 실형에 처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이란 언제든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같은 권력이지만, 수호와 견제라는 두 얼굴을 모두 보여준 셈이다.
셋째, 대법관은 때로 ‘사회적 합의’의 마지막 조율자가 된다. 2021년 ‘임신중지죄’ 위헌소송이 대법원에 도달했을 때, 대법관들은 7년 만에 전원합의체를 열었다. 판결문 초안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한다”는 문장이 있었지만, 최종 판결문에서는 “형사처벌로만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논란”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누구도 완전히 승복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합의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교과서 같은 사례가 됐다.
대법관은 이렇게 살아 있는 권력이자, 죽어서도 말을 계속하는 권력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대법관 임명 때마다 ‘이 사람이 10년 뒤에도 내 삶을 대변할까’를 묻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이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한 시민은 “당신은 20년 뒤에도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을 믿을 수 있게 해주겠느냐”고 질문했다. 후보자는 대답 대신 판결문 한 권을 내밀었다. 2005년 자신이 작성한 ‘성매매 알선죄’ 판결문이었다. 그 판결문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한민국의 대법관은 그래서 ‘법 위에 선 사람’이 아니라 ‘법 안에 함께 사는 사람’이다. 대법관이 쓴 판결문은 결국 시민들이 ‘내일도 이 나라에서 살아도 되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된다. 그 답이 잘못되면, 대법관은 다시 법정에 선다. 역사라는 더 큰 법정 말이다.
세 사람이 한 나라의 미래를 뒤흔든다
Source: Hot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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