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문 너머, 우리가 모르는 삶의 무게

김현수 씨는 37세에 처음으로 자유의 날을 맞았다. 15년형을 마치고 나온 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 가게에 들어가 ‘최신’이라는 단어가 붙은 스마트폰을 사는 것이었다. “그게 2007년에 나온 거래요.” 점원이 말했다. 김 씨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세상은 15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는데, 자신은 2008년 그날로부터 단 하루도 나이들지 않은 듯했다. 이런 시차는 형벌이 단순히 ‘시간’만을 앗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징역형은 삶의 리듬, 사회적 시계, 심지어는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까지 바꿔놓는다.
우리는 흔히 징역형을 ‘벌을 받는 기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간은 사실 ‘벌을 받는 기간’이자 ‘벌이 시작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형기가 끝난 뒤에도 범죄 전과라는 그림자는 해고용 사유가 되고, 주택 임대 거절의 이유가 되며, 아이 학부모 카톡방에서 조용히 퇴장하라는 신호가 된다. 어느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전과자의 5년 내 재취업률은 20%를 넘지 못한다. 이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하루를 움켜쥔 ‘불안’이다.
법정에서 판사는 “이제 다시 시작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첫날밤, 김 씨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아들은 너랑 연락 끊었으면 해.” 그 말 한마디로 20년 우정은 스크린샷 한 장에 담긴 채 끝났다. 형벌이 끝난 뒤에도 남는 형벌, 그것이 바로 ‘징역형의 길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형기는 끝났지만 책임은 남는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책임이란 무엇인가. 과거 행위에 대한 반성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반성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어두는 것이 정당한가. 유럽 일부 국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과를 말소해 주는 ‘형사처벌말소제도’를 운영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지운다’는 뜻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준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동·청소년 관련 범죄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전과가 평생 남는다. 그래서 전과자는 자신이 죄를 지은 날부터 ‘영원한 현재’에 갇히게 된다.
김 씨는 출소 6개월 만에 편의점 야간 알바를 얻었다. 사장은 “손님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미리 말했다. 첫 주, 한 손님이 그를 알아보고는 계산대에 놓인 물건을 던지며 나갔다. 다음 날, 사장은 미안한 표정으로 해고 통보를 했다. 김 씨는 그날 밤 한강변에서 오랜만에 울었다. 그는 나쁜 짓을 했고,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다. 그런데 왜 벌은 끝나지 않는 걸까.
형벌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보호, 격리, 교화, 억제. 그러나 현실은 격리와 억제에만 집중돼 있다. 교화는 교도소 안에서조차 희박하다.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부족하고, 심리치료는 형식적이다. 출소 후 사회복귀 프로그램은 더 초라하다. 결국 ‘처벌’만 남고 ‘회복’은 사라진 셈이다. 이 구조는 범죄자를 다시 범죄로 내몰 가능성을 높인다. 미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교도소에서 나온 이들의 3년 내 재범률은 43%에 달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두 번째 기회’를 말하지만, 제도는 그 기회를 거부한다.
그래서 징역형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사회가 ‘누구를 포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험대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과거를 평생 끌고다니게 만드는 사회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곧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말해준다. 김 씨는 요즘 새벽 택배 분류 일을 한다.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간대라서다. 그는 말한다. “여기서는 내가 김현수가 아니라 그냥 ‘손’이에요. 그게 좋아요.” 자유를 얻은 지 1년, 그는 여전히 사회 속에서 익명을 찾아 헤맨다.
징역형은 그래서 단순히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남는 시간’이다. 형기는 끝나도 사회가 부여하는 시간은 계속된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우리가 ‘다시 시작’을 허락할 때, 비로소 징역형은 끝난다.

Source: Hot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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