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베트남 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한 한국인 감독이 있었다. 당시 베트남 축구는 동남아시아 내에서조차 확실한 강자라 보기 어려웠고, 월드컵이나 아시안컵 본선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내기 어려운 팀이었다. 그 팀을 맡은 박항서 감독은 단 몇 년 만에 베트남을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강팀 반열에 올려놓았다.
박항서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한국에서 탄탄한 밑바탕 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성남 일화 등 프로팀과 다양한 연령별 대표팀 코치진을 거치며 엄격한 기량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아시아 전역에 회자된 것은 베트남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부터다.
초기 베트남 부임 당시만 해도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인 감독이 동남아시아 팀을 이끄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큰 데다, 베트남 선수들의 신체 조건이 동북아시아 권과 비교해 열세에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항서 감독은 이를 역이용했다. 체격은 작아도 민첩성과 끈기를 살릴 수 있는 전술을 짰고, 무엇보다 '원팀(One Team)' 정신을 강조해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팀 중심의 축구를 구현했다.
2018년 초 U23 아시안컵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3 대표팀은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우즈베키스탄과의 결승전은 연장 전반까지 1-1로 맞붙는 혈투였고,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팀을 환호했다. 이 대회는 시작일 뿐이었다.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동남아시아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연말에는 스즈키컵(동남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베트남 축구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이어 2019년 아시안컵에서는 조별리그 통과는 물론 16강에서 요르단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일본과의 8강전에서 0-1로 석패했지만, 베트남은 아시아 무대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팀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박항서 감독의 성공 요인은 단순히 전술적 우위만이 아니었다. 그는 선수 개개인의 체력과 기술적 한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정서적 유대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 축구계에서도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베트남에선 '박 형님'으로 불리며 선수들과 가족 같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훈련장에서는 디테일한 영상 분석과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고, 생활관에서는 선수들의 멘탈을 다독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러한 한국식 규율과 베트남 특유의 끈기를 결합한 접근법이 시너지를 낸 것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최종 예선(3차 예선) 무대를 밟았다.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강호들과 맞붙으며 크고 작은 패배를 맛보기도 했지만, 홈에서 보여준 조직력은 분명 역대 베트남 축구 최고 수준이었다. 비록 본선 티켓은 따지 못했으나, 베트남 축구가 도달할 수 있는 천장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업적 뒤에는 베트남 축구 행정가들과의 긴밀한 협력도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단기 성적에 매몰되지 않고, 유소년 클럽 지원과 지방 리그 활성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하며 베트남 축구 생태계 전반의 발전을 꾀했다. 비록 감독 본인이 모든 인프라를 바꿀 수는 없었으나, 그가 제시한 청사진은 이후 베트남 축구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2022년 말,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협회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고 귀국했다. 그가 떠난 뒤 베트남 축구가 이전처럼 변방으로 돌아갔느냐는 질문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와 유소년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박항서 감독은 한국 내에서 후배 지도자 양성이나 축구 행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조언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인 현장 복귀 시점이나 새로운 국가대표팀 감독 제안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그가 아시아 축구 지도자들에게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라도 믿음과 과학적 관리, 그리고 감독의 철학이 선수들에게 온전히 전달된다면 충분히 도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박항서라는 이름은 이제 특정 클럽이나 국가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넘어선다. 그는 아시아 국가 간의 문화적 벽을 축구로 허문 인물이자, 베트남 축구의 황금기를 설계한 장본인로 기억될 것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역사에 새긴 '형님 리더십'의 힘
Source: Hot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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