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라는 스포츠는 원래 조용했다. 선수는 입을 닫고, 주먹으로 말했다. 관중은 기술을 보았고, 언론은 전적을 기록했다. 그런 세계에 코너 맥그리거가 나타났을 때, 모든 규칙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크럼린에서 자란 한 청년이 어떻게 세계 최대의 격투기 무대인 UFC를 자신의 이름으로 재단했는지를 생각하면, 단순히 "강해서"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맥그리거의 이야기는 재능과 자기확신, 그리고 현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어떻게 하나의 개인에게 휘둘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 연구다.
말이 먼저였다
맥그리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타격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왼손이 위력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입이었다. 시합 전 기자회견에서 그는 상대를 조롱하고, 자신의 승리를 미리 선언하고, 언론을 웃게 만들었다. 격투기 역사에서 쓰레기talk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무하마드 알리가 그랬고, 존 존스도 가끔 그랬다. 하지만 맥그리거는 그것을 하나의 완성된 공연으로 만들었다.
그가 "이번에는 첫 번째 라운드에서 끝낸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시합을 보러 왔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그렇게 하면, 그 발언은 전설이 되었다. 13초 만에 조세 알도를 잡아낸 순간이 바로 그랬다. 수년간 쌓아온 자신감이 한 번의 왼손에 응축되어 터진 장면이었다. 알도는 10년 가까이 패하지 않았던 챔피언이었다.
맥그리거가 보여준 것은 예측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고, 그것을 해냈다.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그의 말에는 무게가 실렸고, 그 무게는 곧 관중의 기대로 변했다.
체급을 넘나든 야심
맥그리거의 커리어에서 특기할 만한 점 중 하나는 체급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는 것이다. 페더급에서 챔피언이 된 그는 라이트급으로 올라왔고, 에디 알바레스를 상대로 타이틀을 따냈다. 한 체급에서 정상에 오른 것도 어려운데, 두 체급에서 동시에 벨트를 들어 올린 선수는 UFC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와의 크로스오버 매치는 스포츠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벤트였다. 격투기 선수가 복서의 룰 안에서 현역 최고의 복서와 맞선다는 것은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결과는 10라운드 TKO 패였다. 하지만 그 시합이 벌어졌다는 자체, 그리고 맥그리거가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시합이 그의 경쟁력보다 그의 스타성을 보여준 장면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영역을 벗어나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그는 쉽게 넘나들었다.
무대 뒤의 그림자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과 달리, 맥그리거의 뒤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2018년 UFC 229에서 카비브 누르마고메도프에게 패배한 것은 단순한 한 패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시합 전 버스에 돌을 던지는 사건, 시합 후의 난장은 격투기가 스포츠인지 폭력인지라는 질문을 다시 꺼내놓게 만들었다.
카비브전 패배 이후 맥그리거의 궤적은 달라졌다. 더스틴 포이리에와의 두 번째 시합에서는 1라운드 암바로 끝내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세 번째 시합에서는 2라운드 TKO 패를 당했다. 부상과 공백이 겹치면서 그의 몸 상태는 전성기와 달랐고, 복귀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무대 밖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서 여러 차례 폭행 및 성추행 관련 혐의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공적 업적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한 사람이 체육관에서 보여주는 규율과 밖에서 보여주는 행동 사이의 괴리는,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브랜드가 된 주먹
맥그리거를 단순한 격투기 선수로만 보면 그의 성공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 최초의 격투기 선수에 가깝다. 위스키 브랜드인 프로퍼 넘버 트웰브를 출시했고, 이는 상당한 상업적 성과를 거두었다. 의류 라인, 훈련 시설, 미디어 활동까지 그의 이름은 옥타곤 밖에서도 작동했다.
UFC가 맥그리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그가 메인 이벤트를 맡은 시합의 페이퍼뷰 구매 수치는 대부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UFC의 전 세계 확장, 특히 유럽 시장 진입에서 맥그리거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아일랜드라는 작은 시장에서 나온 한 선수가 격투기의 지도를 다시 그린 셈이다.
다나 화이트 UFC 대표는 맥그리거를 두고 "이 스포츠를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물론 화이트의 발언에는 자신의 사업을 위한 과장도 섞여 있다. 하지만 맥그리거가 등장하기 전과 후의 격투기 문화가 확연히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선수들의 자기 어필 방식, 미디어 대응, 브랜드 구축 모두 맥그리거가 제시한 모델에서 영향을 받았다.
남겨진 질문
맥그리거가 복귀할 것인가, 그리고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인가. 이 질문은 2024년 현재에도 여전히 매달린다. 그는 계속해서 복귀를 암시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상대는 불확실하다. 마이클 챈들러와의 매치는 오랫동안 거론되었지만 번번이 미뤄졌다. 나이와 부상, 그리고 무대 밖의 문제들이 겹치면서 현실적인 복귀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맥그리거의 유산은 그가 다시 옥타곤에 서느냐 마느냐로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보여준 것은 한 명의 개인이 자기 분야의 문법을 어떻게 다시 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생겨나는지다.
격투기는 여전히 조용한 스포츠가 되지 못했다. 맥그리거 이후, 선수들은 시합 전에 더 많이 말하고, 자신을 더 크게 보여주며, 브랜드를 더 일찍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변화는 이미 격투기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성과이자, 가장 복잡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