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늦은 밤, 한강 다리 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소절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발걸음을 돌려 노래의 주인공을 찾던 사람들은 이내 휴대전화를 들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재환 노래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2008년 9월, 가수 안재환은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음악을 길거리에서 흥얼거리고, 그의 부고를 접하던 날의 충격을 떠올린다. 왜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을 이토록 오래도록 품고 있을까. 아마도 그가 남긴 음악이 단순한 히트곡이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재환은 1994년 그룹 ‘안재환과 위즈덤’으로 데뷔했다. 당시 대중음악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만든 신나는 소음의 뒤끝에 젖어 있었고, 발라드 가수들은 슬픔을 더 크게 외치는 경쟁에 돌입해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가 내민 ‘처음 느낌 그대로’는 묘하게도 소박했다. “사랑이 오려나 봐요/ 설레는 맘으로”라는 가사는 마치 동네 선술집에서 취기에 젖은 청춘이 고백하듯 담백했다. 이 노래는 당시 20대였던 이들의 카세트 테이프에 무한 반복으로 녹음되었고, 대학 축제 무대마다 메들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안재환은 그렇게 ‘국민 서글픈 남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글픔이라는 단어가 가진 허전함과, 그 안에 담긴 유머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변주를 시도했다. 1997년 솔로 앨범 ‘Forever’에서 그는 잔잔한 발라드에서 벗어나 미디움 템포의 R&B를 선보였다. “사랑했지만”이라는 곡에서 그는 더 이상 서글픈 남자가 아니라, 이별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어른의 목소리를 냈다. 이후 그는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며 다른 가수들의 곡에 깊이를 더했다. 김범수의 ‘끝사랑’, 박기영의 ‘시작’ 등은 안재환의 편곡과 프로듀싱이 더해져 원곡의 감정을 한층 깊게 만들었다. 그는 늘 음악으로 사람들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요. 그냥 듣는 게 아니라, 누군가 대신 말해주길 바라죠.” 한 인터뷰에서 남긴 그의 말은 그의 음악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던 그가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했고, 그의 고백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고, 이 말은 1년 뒤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던졌다. 그 전까지는 ‘그냥 마음이 힘든 거지’라고 치부되던 것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안재환은 자신의 죽음으로까지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진 셈이다. “우리는 왜 아픈 사람을 외면했을까.”
그가 남긴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스며든다. 요즘 20대들 사이에서도 그의 노래는 새롭게 회자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노래가 말하는 감정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처음 느낌 그대로”를 듣는 2023년의 청춘도 여전히 첫사랑에 설렌다. “사랑했지만”을 듣는 30대도 여전히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그의 음악은 시대의 언어를 빌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죽음 15주기를 맞은 2023년, 서울의 한 카페에서는 그의 추모전이 열렸다. 전시장 한쪽에는 그가 쓰던 미디 키보드와, 직접 쓴 가사 노트가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손글씨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랑은 결국 추억이 되고, 추억은 음악이 된다.” 그가 남긴 말처럼, 그는 이제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안재환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관통한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혼자 걷는 밤거리에서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마주친다. 그때마다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가 남긴 질문에 답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걸음을 뗀다. 그의 음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슬픔을 나누는 방법이었다. 그는 우리의 서글픔을 대신 노래했고, 우리는 그 노래를 통해 서로를 위로했다. 그래서일까. 1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부를 때, 마치 오랜 친구를 떠올리듯 따뜻한 얼굴을 떠올린다. 안재환, 그는 우리의 서글픔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사람이었다.
재기를 꿈꾸다, 끝내 꿈에 머무르다
Source: Hot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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