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떠올리면 핵 협상, 경제 제재, 종교 지도자, 중동의 긴장 같은 단어가 먼저 따라온다. 국제 뉴스에서 이란은 대개 갈등의 당사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약 9천만 명이 살아가는 나라를 외교와 안보의 언어만으로 설명하면, 정작 이란 사회를 움직이는 역사와 생활의 감각은 놓치기 쉽다.
이란은 단순히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기억, 시아파 이슬람을 중심으로 한 정치 질서, 도시 중산층의 현실적인 욕구, 다양한 민족과 언어,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복잡한 관계가 한 공간에 겹쳐 있다. 이란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모습들이 실제로는 모두 이 나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페르시아라는 오래된 자의식
이란 사람들의 국가 정체성에는 이슬람 이전의 역사가 깊이 자리한다. 아케메네스 왕조와 사산 왕조로 이어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유산은 박물관이나 유적에만 남아 있지 않다. 문학과 언어, 명절, 일상의 상징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란력의 새해인 노루즈다. 춘분에 맞춰 시작되는 노루즈는 조로아스터교 문화와 고대 페르시아 전통에 뿌리를 두며, 오늘날에도 이란에서 가장 큰 명절 가운데 하나다. 가족들은 집을 정리하고 상징적인 물건으로 상을 차리며 새 계절을 맞는다. 종교적 통치 체제 아래에서도 이처럼 이슬람 이전의 문화가 널리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란의 정체성이 어느 하나의 요소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지만 아랍어와는 다른 언어 계통에 속한다. 페르시아어권의 문학 전통은 국경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페르도시, 하페즈, 사디, 루미 같은 시인들의 작품은 고전으로만 취급되지 않는다. 시구가 일상 대화와 축하, 위로의 표현에 인용될 만큼 문학은 여전히 생활 가까이에 있다.
종교 국가와 공화국이 겹쳐 있는 구조
현재의 이란 정치 체제는 1979년 이슬람 혁명에서 출발했다. 혁명은 팔레비 왕조의 권위주의, 사회적 불평등, 서구 국가들의 영향력에 대한 반발이 결합한 사건이었다. 왕정이 무너진 뒤 세워진 이슬람 공화국은 선거 제도와 종교적 감독 체계를 함께 갖췄다.
국민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지만, 최고지도자는 군과 사법부를 비롯한 주요 권력 기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선거 출마자의 자격과 의회의 입법을 심사한다. 따라서 이란의 선거에는 실제 경쟁이 존재하면서도, 경쟁할 수 있는 범위 자체는 제도적으로 제한된다.
이 구조를 민주주의나 독재라는 하나의 단어로만 분류하면 현실의 작동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행정부의 외교적 태도와 경제 운영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만, 국가의 근본 노선은 선출되지 않은 종교 권력과 안보 기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사회는 국가보다 빠르게 변한다
이란 사회를 볼 때 특히 주목할 부분은 높은 도시화 수준과 교육을 받은 젊은 인구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주거비, 취업, 결혼, 교육 문제가 일상의 큰 관심사다. 인터넷과 위성 방송, 해외 거주 이란인과의 교류는 공식적인 정보 통제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경계를 넓혀 왔다.
여성의 현실에는 더욱 뚜렷한 긴장이 존재한다. 이란 여성들은 교육과 의료, 문화, 전문직 분야에 폭넓게 참여해 왔지만 복장, 가족법, 이동과 공적 활동에서는 여러 법적·사회적 제약을 받는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 이후 확산한 시위는 의무적 히잡 착용 문제를 넘어 개인의 존엄, 국가 권력,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이란 사회를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과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이라는 두 집단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경제 정책에는 불만을 가진 사람, 정치적 변화를 원하지만 외국의 개입에는 반대하는 사람, 해외 문화를 즐기면서도 페르시아 전통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현실의 여론은 외부에서 보이는 구호보다 훨씬 다층적이다.
제재는 외교 수단이면서 생활의 조건이다
이란 경제는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풍부하지만 오랫동안 국제 제재의 영향을 받아 왔다. 핵 개발을 둘러싼 갈등, 금융 거래 제한, 원유 수출 제약은 정부 재정뿐 아니라 환율과 물가, 의약품 조달, 민간 기업의 해외 거래에도 부담을 준다.
제재의 효과를 평가할 때는 국가와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제재는 정부의 수입과 국제 거래를 제한하지만, 비용의 상당 부분은 물가 상승과 통화 가치 하락을 통해 일반 가정으로 전달된다. 반면 공식 금융망이 막히면서 비공식 거래와 제재 회피에 능숙한 조직의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다.
이란 내부의 경제 문제를 모두 제재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정확하지 않다. 정책의 불확실성, 부패, 국영·준국영 기관의 비중, 투자 환경의 취약성도 성장을 제약한다. 외부 압력과 내부 구조가 맞물리기 때문에 경제난의 원인을 하나로 지목하기 어렵다.
핵 문제 뒤에 놓인 불신의 역사
이란 핵 문제는 기술적 논쟁인 동시에 깊은 상호 불신의 산물이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목적과 핵 기술을 이용할 권리를 강조해 왔다. 반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 일각은 우라늄 농축 수준과 사찰 범위, 과거 활동에 관한 투명성을 우려해 왔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고 국제 사찰을 강화하는 대신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2018년 합의에서 탈퇴하고 제재를 복원하면서 체제가 크게 흔들렸다. 이후 이란도 합의에서 정한 핵 활동 제한을 단계적으로 넘어섰다.
이 과정은 합의문 자체만큼이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란은 약속을 지켜도 제재 완화가 지속될지 의심하고, 상대국들은 이란의 핵 활동을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는지 의심한다.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이러한 불신을 관리할 장치가 없다면 기술적인 타협만으로 장기적 안정을 만들기 어렵다.
이란을 하나의 얼굴로 보지 않기
이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이란 사회 전체를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종교적 통치 구조를 설명하는 것과 모든 시민을 보수적인 종교인으로 간주하는 것도 다르다. 마찬가지로 도시 청년들의 변화 요구만을 보고 농촌, 소도시, 종교 공동체의 관점을 지워서는 이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란은 고대 유산을 자랑하면서 혁명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엄격한 사회 규범을 시행하면서 높은 교육 수준의 시민 사회를 품고 있다. 서방과 대립하면서도 세계 경제와의 연결을 필요로 하며, 주변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내의 생활고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이란을 읽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한 가지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와 시민, 종교와 문화, 국가 안보와 개인의 일상을 구분해 살펴볼 때 비로소 뉴스 속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란은 설명하기 쉬운 나라가 아니라, 단순한 설명을 경계해야 하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