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이다. 김영삼이 아니라 'YS'가 되고, 노무현이 아니라 '노통'이 된다. 이름은 별명으로, 별명은 상징으로 대체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묘한 역설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사람인데, 뽑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다.
대통령실 근처를 지나다 보면 흥미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차량 행렬이 지나갈 때면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인다. 그 시선은 경멸이 될 수도, 열망이 수도, 또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 지는 것이 있다. '관심'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어떤 인간에게도 관심을 집중시키는 힘을 지닌다. 그것이 촛불이든, 탄핵이든, 또는 무덤덤한 일상적 시선이든 말이다.
권력의 물리학
대통령제의 미묘한 점은 '한 사람'과 '국가'가 동일시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외교 무대에서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은 개인 간의 인사가 아니다. 두 국가의 무게가 담긴 행위다. 반대로 국내에서 대통령이 시장에서 국수를 먹는 모습은 '국가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적 모습'으로 소비된다. 같은 사람이 하는 같은 행위인데,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받는다.
이러한曖昧함이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동시에 강력하고 약하게 만든다. 강력한 것은 상징적 권위 탓이고, 취약한 것은 그 상징이 언제든 해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말기, 시민들이 달걀을 던졌을 때 대통령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분노였을까, 굴이었을까, 아니면 이해했을까. 기록은 없다. 다만 그 순간,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마나 물리적으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시간의 비극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집 초반의 은 지지과 말년의 지취한 모습. 이 극적인 대비는 개인의 부패나 무능 탓만은 아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길고도 짧다. 호흡의 정책을 펼치기 짧고, 단기 성과를 쌓기엔 길다. 그래서 대통령들은 갈수록 조급해진다. 조급함은 실패를 낳고, 실패는 비판을 낳는다.
박정희 이후의 대통령들을 생각해보라. 누구도 해피엔은 아니었다. 감옥, 암살, 자살, 감옥, 그리고 다시 감옥. 이 비극의 연속성은 단순히 한국 정치의 어둠만은 설명하지 못한다. 시스템 자체의 문제, 즉 압도적인 권력이 집중된 구조가 개인을 삼키는 방식도 있다. 대통령이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인간을 그 자리에 맞는 형태로 재구성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
재미있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매번 비슷하다는 점이다. 경제는 성장해야 하고, 부패는 없어야 하며, 외교는 당해야 하고, 복지는 늘려야 한다. 이 모든 것을 5년 안에, 게다가 국회의 협조 없이도 해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아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같은 기대를 한다.
이것이 대통령 선거의 본질적 긴장이다. 투표용지에 도장 찍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를 바란다. 기적과 현실. 기적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환상이고, 현실은 '어차피 비슷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선 연설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한다. 하지만 취임식 날, 그는 이미 '국가'가 되어 있다. 그 간극이 대통령제의 드라마틱한 출발점이다.
결국은 사람
대통령의 마지막 날은 어떤 모습일까. 청와대를 나설 때,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과거의 대통령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퇴임 후의 삶을 살았다. 어떤 이는 역사 앞에서 변명했고, 어떤 이는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평가는 역사가 할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 모두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벗어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제를 둘러 무수한 론이 있지만, 가장 소박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 사람이 수천만人的 욕망을 대신할 수 있는가. 아니, 그래야 하는가.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번 선거 때마다 새로 쓰인다. 그리고 그 답은 상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완벽한 답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는 제도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 바라는 우리의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밤늦게 청와대 앞을 지나는 사람은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가끔, 저 담봉 너머의 불빛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잠 못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다. 잠드는 순간조차 완전한 자신이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